“겸손한 교황의 시대”인가, “이미지 정치의 승리”인가 — 레오 14세를 둘러싼 가톨릭 언론 보도의 프레임을 다시 묻는다
“상처 입은 치유자”, “겸손한 사목자”, “인간적인 교황.”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레오 14세’라는 이름과 함께 쏟아진 언론 보도의 핵심 키워드들이다. 국내 가톨릭 매체들은 이 새 교황의 인품과 스타일을 “우리 시대가 기다려온 리더십”이라 칭하며, 감정적 공감과 신뢰의 프레임으로 교황의 등극을 환영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감동 서사’에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이 팩트 기반의 바른 공동체, 바른 사회를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이미지, 반복되는 수사: '당신이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교황'
가톨릭평화신문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등 주요 매체들은 레오 14세의 교황 선출 이후 그의 생애를 ‘공감’과 ‘겸손’으로 서술해왔다. 어릴 적 동네 농구장에서 놀던 이야기, 치카고 흑인 공동체에서 봉사했던 경험, 성직자 권위주의를 경계했던 말들, 라틴아메리카 선교지에서 배운 “아래로부터의 교회” 정신 등이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로 반복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교황”이라는 이미지를 구조화하는 수사 전략이다.
이러한 묘사는 마치 한 편의 홍보 영상처럼 감정을 선취한다. 비판적 질문을 유보시키고, “우리가 믿고 싶은 교황”이라는 이미지를 사실로 고착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호의적인 감정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인가?
침묵하는 담론, 보도되지 않는 의제들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어떤 이야기가 말해지고, 어떤 이야기가 말해지지 않는가?”**이다.
레오 14세가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불명확한 여성의 사제직 참여 문제, 성소수자 신자들의 권리, 성직자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회의 구조적 책임, 전통주의 신학과의 갈등 등은 언론 보도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가”를 통해서도 아무런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언론은 종종 침묵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한다. ‘말하지 않음’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이며, 이는 곧 의제 설정의 실패이자, 신자들의 토론과 성찰을 막는 무언의 검열이다.
감정의 정치, 교회 안의 이미지 전략
이러한 보도 행태는 일종의 ‘감정의 정치학’을 구성한다. 교황에 대한 기대, 치유에 대한 희망, 친근한 이미지에 대한 호감은 **공적 담론을 감정화(感情化)**시키고, 신앙 공동체를 ‘분별’보다 ‘정서적 수용’의 공간으로 만든다.
“우리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표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언론은 그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서사를 제공했고, 교회는 그 서사를 필요로 했다. 감정은 진실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신뢰는 결국 정직함과 투명함 위에 쌓여야 한다.
무엇이 진짜 ‘겸손’이고, 누가 그 말을 결정하는가
가톨릭 언론이 반복해서 말하는 ‘겸손’, ‘공감’, ‘포용’은 그 자체로 평가 불가능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함의를 가지며, 어떤 현실을 가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언론은 감동적인 ‘교황 이야기’를 전하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의 교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 성직 체계의 권력 불균형, 침묵당하는 신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조명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언론은 더 이상 복음의 등불이 아니라 권력의 반사판에 불과해진다.
“기억하라, 감정은 진실을 대신할 수 없다”
가톨릭 공동체가 진정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한국 사회가 종교 안에서 건강한 담론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미지’가 아니라, ‘감내하기 어려운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론은 그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첫 번째 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