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용기,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며 모든 것을 포기한 이야기
그래엄 슬리먼 교장의 투쟁과 희생, 피터 시어슨 신부의 악행을 폭로
그래엄 슬리먼 교장은 자신의 학교에서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피터 시어슨 신부라는 악명 높은 사제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성추행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불만으로 제기한 후 교장직을 사임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래엄 슬리먼 교장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추기경 조지 펠에게 전화를 끊긴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1990년대이며, 슬리먼은 뉴사우스웨일즈의 그래프턴에 위치한 작은 빅토리아 가톨릭 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는 피터 시어슨 신부의 악행과는 1,5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교장 슬리먼은 피터 시어슨 신부를 "연쇄 성범죄자"로 묘사하며, 그가 선배 사제로 있던 선베리에서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교구가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학생들을 시어슨 신부의 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슬리먼은 교구와 대교구 관리들에게 반복해서 경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는 시어슨 신부의 아이들에 대한 성적 접근과 그의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을 지적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슬리먼은 또한 시어슨 신부가 학교 주변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고도 전했습니다.
슬리먼 교장의 이야기는 용기와 희생의 이야기로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하며 자신의 직위와 안정된 삶을 희생했지만, 그의 행동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은 사회에 변화를 불러오고, 더 안전하고 건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멜버른의 대주교였던 펠은 시어슨 신부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피해자인 슬리먼의 고발에 대해 열악한 대응을 보였습니다. 슬리먼은 시어슨 신부의 부정직한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주교로부터 믿음을 받지 못했으며, 가톨릭 학교 체제에서 추방되고 다른 일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정신 건강과 가족의 재정 안정성은 심각하게 악화되었습니다.슬리먼은 이러한 억울함과 절망 속에서 대주교인 펠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펠에게 자신이 겪은 내면의 혼란과 고통을 이해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펠은 슬리먼의 호소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거부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펠은 사건 당시 슬리먼의 고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시어슨에 대한 조사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왕립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펠은 시어슨에 대한 일반적인 성적 부적절 행위에 대한 주장을 알고 있었지만, 교육청이 해당 문제를 처리할 것이라 생각하여 개입하지 않았습니다.슬리먼의 투쟁은 결국 왕립위원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피해자인 슬리먼의 올바른 행동이 인정되었습니다. 위원회는 펠에게 시어슨의 제거나 정직화를 요구하는 등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펠은 슬리먼을 "무례하고 어려운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슬리먼의 행동이 옳았다고 인정했습니다.슬리먼은 현재 퀸즈랜드의 한 부동산에서 상담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과 피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대주교와의 대면은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정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공정한 대우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슬리먼의 사례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의 부적절한 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자의 절망적인 싸움을 드러내는 사례로, 사회적인 문제로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례들은 피해자 보호와 교회 내부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슬리먼 교장은 현재 교회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브레던의 상해 전문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슬리먼 교장이 시어슨에 대한 그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교회의 무행동으로 인해 그의 교육 경력 단절을 겪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슬리먼 교장과 그의 가족은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가족의 고통을 언급하며 아홉 살 손녀가 자신을 "유명한 사람"으로 알려준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처음에는 축구 선수로 알려준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말한 것은 그와는 무관한 사실이었습니다. 이렇듯 슬리먼 교장과 그의 가족은 그의 잃어버린 경력으로 인해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슬리먼 교장은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교장으로 있을 당시 교구와 대교구 관리들에게 많은 불만을 제기했으며, 그는 "집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보낸 시간의 99%를 자신의 아이들을 아동 성추행 사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관리자들에게 작은 아이들 때문이라면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교장으로서의 의무는 "아이들의 안전 보호"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의 요구에 무반응하고, 결국 학교에 아동 성추행 사제를 허용했습니다.
슬리먼 교장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무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아이들과 가족이 고통받았으며, 이는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교장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교회와 교육 기관의 안전 관리와 보호 체계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습니다.
슬리먼 교장의 소송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이 기대됩니다. 이를 통해 교회와 교육 기관에서의 아동 보호 정책과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