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얼룩진 개신교: 신뢰의 위기와 도덕적 타락
개신교회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목사는 영적 지도자로서 신앙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드러난 사건들은 그 자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교회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68%가 목사·전도사 등 지도자급 인물”이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나왔다. 이러한 사건들 중에서 교단에 보고되어 가해자가 징계를 받은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성범죄와 미온적 대응으로 인해 개신교는 스스로 ‘사이비’ 종교와 다름없는 오명을 자초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목회자 성범죄 사례
교회 내 성범죄는 단순 일탈이 아닌, 상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병폐다. 한국 대형교회 목사 이재록의 사례는 그 극단을 보여준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여신도 8명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폭행하였고, 42건의 성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목사가 주장하는 “신의 권능”을 믿었기에 저항하지 못했다고 법원은 밝혔다. 이는 종교적 권위를 악용한 영적 착취에 다름 아니다.
정명석(JMS)과 같은 자칭 메시아들은 해외로 도피하며 여신도들을 성폭행했고, 징역 10년 복역 후에도 다시 성범죄로 기소되는 등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들 외에도, 정통 교단에서도 목회자의 성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전병욱 목사는 교인 5명을 상습 성추행하여 민사상 배상 판결을 받았고, 감리교단 소속의 전준구 목사는 성추행 혐의로 재판 중이던 2018년에 오히려 감독으로 당선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목사의 탈을 쓴 성범죄자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드러내며, 개신교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조적 묵인과 조직적 은폐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개인의 일탈로 치부되며 교단 차원에서 사실상 용인되고 은폐된다는 점이다. 교단은 목회자의 성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투명하고 단호한 처벌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각 교단은 가해 목회자를 치리할 책임을 방기하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거나 지지자들을 고소하는 등 문제를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교인들에게는 “교회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심지어 가해 목사를 비호하는 무리가 피해자를 음해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전병욱 목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성추행 의혹으로 사임한 뒤 교회로부터 13억 원대의 거액 퇴직금을 받고도 공식 사과 한마디 없이 새 교회를 개척했다. 분노한 교인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자, 그의 추종자들은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은 이단”이라는 현수막을 내걸며 비난했다. 이러한 태도는 정상적인 종교 조직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사이비 집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솜방망이 대처와 비호의 문화
개신교 내에서 성범죄는 교단 재판에서 가볍게 넘어가거나 아예 징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다. 피해자 지원 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교회나 교단에 알린 사건 중 실제 가해자에게 징계가 내려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반 교인 86.5%는 성범죄 목사를 영구 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목회자의 절반 가까이는 일정 기간 후 복권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내부의 안일한 인식과 자기식구 감싸기 문화가 지속되는 한, 성범죄자는 계속해서 교회를 오염시키며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결론: 개신교의 도덕적 타락
개신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신앙 공동체로 남아 있지 않다. 죄를 덮어주고 범죄자를 감싸는 교회는 이미 성직의 본분을 저버렸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목회자를 영구히 축출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치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책무다. 하지만 지금 개신교회는 그러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내부 비판을 억누르고 가해자를 감싸는 모습이다.
사회는 개신교 전체에 대한 시선을 냉혹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때 ‘전통 교회’라 불렸던 개신교는 이제 타락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교회가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는커녕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보호하는 이상, 개신교는 사이비 종교와 다를 것이 없다. 이제 개신교는 자기보호에 급급한 태도를 버리고, 피해자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신교는 더 깊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