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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뒤에 가려진 진실 – 가톨릭 교회와 식민주의, 그리고 원주민 학살의 그림자

9일 볼리비아 산타 크루즈에서 프란치스코 로마 가톨릭 교황이 연설하고 있다.

 

 

“복음의 이름으로 자행된 학살과 탄압…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통”

수 세기 동안 인류의 도덕적 나침반으로 여겨졌던 가톨릭 교회. 그러나 그 뒤편에는 침묵해온 어두운 역사가 존재한다. 복음을 전파한다는 명분 아래, 교회는 식민제국과 손을 잡고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제, 그 역사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다시금 고조되고 있다.


교황이 승인한 식민지 정복 – ‘발견의 원칙’이라는 이름의 폭력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후, 유럽 열강의 식민지는 종교의 이름으로 확장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Dum Diversas와 Romanus Pontifex 칙서를 통해 “이교도”의 땅을 정복하고 주민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는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뒤이어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Inter Caetera를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대륙을 나눠 갖는 데 개입했다.

이러한 교황의 교서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로 불리는 국제 관행의 기반이 되었다. 비기독교 국가의 영토는 발견한 가톨릭 국가의 소유로 인정된다는 이 원칙은 무수한 침략과 학살, 강제 개종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면죄부로 악용됐다.


무력과 십자가가 함께 한 정복 – 수천만 명의 목숨과 문화가 사라지다

아메리카에 상륙한 유럽 정복자들은 성직자들과 동행하며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한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학살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신대륙의 황금과 자원을 수탈했고, 전염병, 강제 노동, 구조적 폭력은 토착 문명을 붕괴시켰다.

성직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만행을 눈감거나, 오히려 조장하기도 했다. 양심적 성직자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식민자들의 폭력을 고발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거대한 종교-제국 동맹 앞에 묻혀버렸다.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침묵의 대학살’

식민지 시대가 끝난 뒤에도 교회의 인권 침해는 멈추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북미 지역에서 운영된 원주민 기숙학교에서는 문화적 말살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약 15만 명의 아동이 가족과 강제로 분리되어 수용됐고, 이들 중 상당수는 가톨릭이 운영한 학교에서 언어 사용 금지, 체벌, 성적 학대를 겪었다.

202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전직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명의 아동 유해가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되며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캐나다 방문 중 눈물로 사죄했지만, 피해자들이 바라는 실질적 보상정확한 진상 규명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편 바티칸의 언론은 이 사건을 ‘연민’, ‘선물’ 같은 언어로 포장하며 진정성 없는 이미지 회복에 집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진행형의 식민주의, 그리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

오늘날에도 그 상처는 남아 있다. 캐나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 폐지와 토지 반환, 피해 공동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에는 과거 원주민 탄압에 앞장섰던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철거되며, ‘성인’이라는 교회의 상징조차도 재평가되고 있다.

가톨릭 내부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9년 아마존 시노드에서는 토착 문화를 존중하는 사목 방식이 논의됐지만, 수백 년간 축적된 상처를 치유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사과만으로 충분한가?” – 도덕적 권위에 도전받는 교회

교회의 도덕적 권위는 지금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단순한 사과 이상의 변화와 책임이 요구되는 지금, 가톨릭은 역사 속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뗄 것인가?

식민주의의 칼날 아래 무너진 공동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들은 묻는다.
“십자가는 왜 우리의 언어와 이름, 그리고 아이들을 빼앗았는가?”
그 질문에, 이제 교회가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