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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레오 14세가 존경받을 수 없는 이유

 

 

 

 

― 성범죄 은폐, 재정 불투명, 여성 배제, 정치적 위선

“거룩함의 언어로 권력을 감춘 교황”

2025년 봄,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했다.
첫 미국 출신 교황 로버트 프리보스트, 즉 레오 14세다.
그의 등장은 ‘개혁’과 ‘포용’,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영성’이라는 언어로 포장되었다.
언론은 “가난한 이를 위한 교황”, “소통의 리더십”, “겸손한 행정가”라며
그의 등장을 하나의 ‘희망 서사’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레오 14세가 상징하는 것은 ‘새로운 교회’의 탄생이 아니라,
오히려 ‘은폐와 미화의 언어’로 유지되는 낡은 교회 권력의 재연장은 아닐까.


1. “믿음”의 이름으로 덮인 범죄 ― 성직자 성범죄 은폐

가톨릭의 오랜 상처, 성직자 성범죄.
수십 년간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이제야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레오 14세는 이를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
피해자 구제 시스템 강화에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페루 주교 재직 시절
성범죄 의혹 사제에 대해 징계 대신 ‘조용한 전출’을 선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교회 안에서 ‘형제애’라 불리는 그 조치는,
세상 밖에서는 ‘은폐’라 불린다.

신앙의 언어로 포장된 침묵은 더 이상 거룩하지 않다.
그것은 진실을 가리는 구조의 또 다른 이름이다.


2. ‘투명’을 말하며 불투명을 택하다 ― 교황청 재정의 모순

레오 14세는 즉위 직후 “교황청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정 감사와 투자 내역 공개 범위가 오히려 축소되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가 추진한 교황청은행(IOR) 외부 감사제도
그의 재임 이후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그가 임명한 재정관리국 고위 성직자 중 상당수는
이전 바티칸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인사들이기도 했다.

‘투명성’을 말하는 동시에
‘감사’라는 단어가 불편한 권력과 손을 잡는 모순.
그 이중 언어야말로
“거룩함의 가면 뒤에 숨은 교황청 정치”의 상징이다.


3. 닫힌 문, 배제된 신앙 ― 여성과 평신도의 자리

“여성의 교회 참여 확대”는
레오 14세 즉위 직후 그가 내세운 주요 과제였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여성에게 허락한 권한은
‘조언자’와 ‘보조자’의 역할에 그쳤다.

가톨릭 내부에서 여성 신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다.
그들은 ‘결정 구조’ 안에서의 발언권을 원한다.
하지만 교황청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레오 14세의 교회는 여전히 ‘남성의 교회’다.
여성은 들을 수 있으나, 말할 수는 없다.


4. 말뿐인 정의, 멈춘 개혁 ― 정치와의 위험한 타협

레오 14세는 국제무대에서 ‘대화의 교황’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대화’는 종종
권력자에게 침묵하고, 약자에게 설교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는 중동 전쟁과 난민 문제에서는 원론적 언급만 반복했고,
남미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내정 간섭을 피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한 이 침묵은
결국 권력과의 타협으로 귀결된다.
그가 외치는 ‘평화’는
정의 없는 평화, 권력의 안정을 위한 평화일 뿐이다.


5. 거룩함의 언어, 정치의 언어 ― 교황의 이미지 전략

레오 14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언어다.
그는 기자회견, 연설, 미사에서
‘가난’, ‘용서’, ‘대화’ 같은 상징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 단어들은 언뜻 들으면 따뜻하고 포용적이지만,
그 반복 속에서 구체적 실천과 책임은 사라진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말 —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는 병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말 뒤에는
‘누가 그 상처를 냈는가’에 대한 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명분 아래,
상처의 원인을 은폐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6. 진실을 말할 용기 ― 거룩함의 가면을 벗길 때

많은 언론이 ‘새로운 교황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실은 때로 불편하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레오 14세의 문제는 단지 한 인물의 도덕성에 있지 않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 조작과 언론 프레임의 유착,
그리고 진실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교회의 문화가 문제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교회를 살리는 시작이다.

우리는 더 이상 ‘거룩함’이라는 단어에 취해
권력의 위선을 면죄부로 삼을 수 없다.
진실을 직시할 때만,
비로소 참된 선함이 무엇인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가면을 쓴 권력’에게 속는다.

레오 14세의 시대를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찬양이 아니라,
투명한 질문, 두려움 없는 기록,
그리고 양심의 목소리다.